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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렁쇠
 2011-06-17 18:51:49 ȸ  7019
      땅끝마을 해남을 가다
īװ  전라남도
 
경기도 일산에서 꼬박 6시간을 달려 도착한 땅끝마을 해남에서 필자 이재언이 본 것은 남해의 낙조가 연출하는 장관만이 아니었다.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와 더불어 조선시대 걸출한 화가를 양산한 우리의 국토 끝자락, 문화의 향기를 찾아서. (편집자 주)

우는 것이 뻐꾹샌가 푸른 것이 버드나무 숲인가
노 저어라 노 저어라
어촌의 두어 집이 안개 속에 들락날락하는구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맑고 깊은 못에 온갖 고기 뛰논다
- 고산 윤선도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 ‘춘사(春詞)’ 중

조선의 대표적인 시인 윤선도 선생을 만나기 위해 해남땅을 찾기로 했다. 새벽 2시, 약속 장소인 일산 호수공원 주차장에는 일행을 해남까지 실어줄 버스와 자전거 트레일러가 대기하고 있었다. 해남 땅끝마을 라이딩이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연락을 취해 간신히 자리 하나를 얻어 합류할 수 있었다. 해남 라이딩은 자전거 마니아들의 로망이다. 근력 좋은 건각(健脚)들이야 서울서부터 주파를 하기도 하지만, 버스로 남도까지 점프를 하는 일도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이다. 16명분 자전거를 실은 트레일러를 매달고 달리는 버스인지라 꼬박 6시간을 달려 해남읍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기매운탕으로 고단한 몸을 북돋우고 약간의 휴식을 가진 뒤 바로 라이딩을 시작했다.

고산 유적지와 두륜산
가장 먼저 들른 코스가 바로 고산 선생의 유적지다. 해남읍 남쪽으로 3km 정도 내려가면 왼쪽으로 야트막한 덕음산이 나온다. 그 기슭에 해남윤씨 어초은파의 종가로서 시조 사당을 비롯해 고산 선생의 사당과 유물전시장 등이 함께 모여 있다. 특히 이곳은 고산 선생의 녹우당과 유물전시관에 소장된 해남 유일의 국보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으로 유명하다. 녹우당(綠雨堂)은 효종이 대군 시절 자신의 스승이었던 고산에게 하사한 수원집을 해체, 운송해 바로 종가의 사랑채로 재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로서는 얼마나 큰 규모의 대역사였을까. 녹우당은 ‘푸른 비’가 내리는 집이라는 의미로 사당 뒤쪽의 비자림이 비에 젖어 있다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쏟아져 내리는 장면을 보고 이름 붙인 것이라 한다. 바로 이 고택에서 고산 선생의 주요 시작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산기슭에 펼쳐진 비자림은 조상 때부터 조림되어 선생의 문심을 다듬을 수 있었던 곳으로 그 오솔길의 분위기가 일품이다.

고산 유적지에서 나와 두륜산 대흥사로 가는 길은 10km 정도 된다. 마침 석가탄신일에 즈음해 참배자들이 많아 사찰 진입로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자전거 행렬의 대오가 흐트러지고 끊어지면서 숲의 터널을 서행해야 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이 장관이다. 반도 최남단의 영산으로 통하는 두륜산(703m) 자락에 위치한 대흥사는 신라 진흥왕 5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이래 13명의 대종사와 13명의 대강사를 배출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특히 대흥사 내 표충사는 서산대사의 유품을 봉안하고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으로 불교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 조선 말 초의선사가 머물면서 추사, 다산 등 당대 최고의 지성들과 교우를 가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무량수각(無量壽閣), 일로향실(一爐香室), 동국선원(東國禪院) 등의 편액은 추사 선생이 직접 쓴 것으로 무심코 지나치기에는 문화재 가치가 무척이나 큰 곳이다.
잠시 대흥사에서 빠져나와 청국장으로 점심식사를 한 뒤 식당에 자전거를 맡겨두고 두륜산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갔다. 완만한 듯한 산세지만 빼어난 기암절벽이 조화를 이루는 명산을 시원한 바람과 함께 즐길 수 있었다. 멀리 완도까지 보이는 절경도 절경이지만 난대성 식물 군락지로서도 의미를 갖는다. 분재로나 보았던 소사나무, 윤기가 흐르는 동백나무, 사람주나무, 굴거리나무, 팥배나무, 노린재나무…. 이름을 다 외기도 어려운 다양한 초목이 울창하게 자라는 모습에서 우리 자연을 배울 수 있었다.

1 고산 선생 유적지의 전통 연못. 2 비 오는 날의 미황사와 달마사. 3 땅끝전망대에서 본 다도해. 4 5백년 종가의 역사를 증명해주는 은행나무.

땅끝마을
케이블카에서 내려와 이제 땅끝마을까지 가려면 50km 정도를 이동해야 한다. 두륜산과 주작산 사이를 통과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오소재를 비롯해 언덕이 많은데다가 날씨는 한여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바다 쪽에서 바람이 불어와서 시원했다. 가는 중 들판엔 마늘 농지가 많이 눈에 띄였지만, 정작 마늘은 주산물 리스트에 나오지도 않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두륜산 기슭을 벗어나 만나는 것이 달마산(489m) 자락이다. 두륜산에 비해 낮지만 산세가 바닷가에까지 미쳐 굴곡이 심한 편이다. 땅끝마을까지 그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전망대에 올라가는 길은 특히 경사가 심했다. 정상 사자봉은 122m밖에 안 되지만 달마산 자락의 봉우리로서 땅끝의 대미를 장엄하게 매듭짓는 모습을 하고 있다. 전망대에 올랐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남해의 낙조가 연출하는 장관을 만끽하고 있었다. 땅끝마을 숙소 식당에 마련된 갖가지 전복 요리는 진미 중의 진미로 라이더에겐 최고의 보양식이기도 했다.

1 마늘 수확을 앞둔 해남의 들녘. 2 고된 오르막길에서도 표정만은 밝은 라이더들. 3 두륜산 정상에서 함께한 여행동지들.
우중의 미황사와 공재 고택
일기예보에서 비소식이 있기는 했지만 새벽부터 내리는 빗발이 의외로 세찼다. 그 바람에 건축사 모아님(김관수)과 함께 일행에서 떨어져 보길도를 다녀오기로 한 계획이 무산되었다. 진도로 건너가기로 했던 동호회 일행들의 계획 역시 차질이 생겼다. 결국 자전거를 트레일러에 싣고 버스 편으로 달마산 미황사를 향해 이동했다. 달마산 기슭을 한 바퀴 돌아 미황사로 올라가는 형국이었다. 미황사 역시 신라시대 의조화상이 창건한 사찰로 과거에는 그 규모가 대단히 컸지만 현재는 비교적 아담한 사찰로 자리매김했다. 불교가 해로를 통해 유입되었다는 학설을 뒷받침하는 사찰로서도 비중이 있지만, 단청이 벗겨져 단아하고 소박한 대웅보전이 병풍과도 같은 달마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에 많은 사람들이 매료된다. 더욱이 비 오는 날의 달마산을 등지고 있는 대웅보전의 고요하고 단아한 모습은 그윽하기가 그지없어 우리 일행들은 그저 탄성을 지를 뿐이었다. 특히 주춧돌에는 물고기, 게, 문어 등의 문양이 양각으로 부조되어 있는데, 이는 바닷가 해남 지역 환경과 관련된 시문(施紋)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미황사에서 머지않은 곳에 공재 윤두서 고택이 있다. 백포리 망부산 자락에 터를 잡고 벼슬을 마다하고 화재(畵材)를 갈고 닦은 공재 윤두서는 윤선도 선생의 증손자로 조선 중·후기 겸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화가이며, 김홍도 등의 풍속화가 등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선비화가이다. 형형한 눈빛을 하고 있는 장부형 인물의 자화상으로 유명한 공재 선생의 바로 그 자화상이 고산 유적지 유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해남군 홈페이지에 소개된 바로는 평양박물관에 보다 젊은 시절 모습의 자화상이 하나 더 소장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작품사진을 함께 올려놓은 것이 있다. 고택은 고산 유적지와는 달리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의외였다. 고택 바로 뒷집이 해태·크라운그룹 윤영달 회장 선친의 생가로 알려졌다. 예술 전반에 걸쳐 조예가 깊은 것도 바로 이러한 가문의 내력에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니 대학 때 알고 지낸 친구 한 명도 해남 출신의 윤씨였다. 해남은 윤씨, 진도는 허씨 가문이 많은 화가를 배출한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비가 여전히 세차게 내렸다. 이렇게 국토의 가장 끝자락에서 확인한 미술의 화맥과 전통은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지나치게 제도화되고 상업화된 예술은 도시를 떠나 존립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바로 옆 진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만, 자생적인 지역 미술의 전통과 맥이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럼에도 동시대 현실 속에서 그 존속의 내막은 그리 유복해 보이지 않는다. 판소리의 경우도 그렇지만 현대화의 격랑 속에서 우리의 것이 오히려 낯설다니 어찌된 일인가. 속절없이 유실되어가는 우리 전통 예술이 다시금 힘을 얻고 부흥할 수 있는 날은 그리도 요원한 것인가.

필자 이재언은
1958년생. 강원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상명대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선갤러리 아트디렉터 및 한국공예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1989년부터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는 한편 2006년부터 인천-서울, 일산-서울 장거리 ‘자전거 출근’과 함께 자전거 문화와 미술을 접목한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해오고 있다. 역서 「존 듀이 경험으로서의 예술」(책세상)


<■글&사진 / 이재언 (미술평론가) 쭕 취재 협조 / 울프라운치(Wolf Launch)> setFontSiz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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