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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렁쇠
 2011-06-17 18:52:40 ȸ  1192
      땅끝마을
īװ  전라남도
 
.미황사는 우리나라 불교의 해로 유입설을 뒷받침하는 고찰이다. 옛날에는 크고 작은 가람이 20여 동이나 있었던 거찰이었고, 지금은 보물 제947호인 대웅전과 보물 제1183호인 응진전을 가진 아름다운 절이다. 신라시대 의조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 미황사 소박해서 아름다운 절이다.
ⓒ 이현숙


신라 경덕왕 8년(749)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은 돌배가 사자포구(지금의 갈두상)에 닿자, 의조 스님이 100명 향도와 함께 쇠등에 그것을 싣고 가다가 소가 한 번 크게 울면서 누운 자리에 통교사를 짓고, 다시 소가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답고 금의인이 황금으로 번쩍거렸다는 것을 기리기 위해 이름도 미황사라고 지었다고. 어여쁜 소가 점지해준 절인 동시에 경전을 봉안한 산이라는 뜻이다.
▲ 대웅전 대웅전은 지붕 보수 공사중...
ⓒ 이현숙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올라가니 대웅전은 공사중이다. 그러나 공사는 개축이나 증축이 아닌 보수였다. 기와 보수. 마음먹고 찾은 절인데 공사중이라 대웅전 안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미황사 대웅전에는 단청이 없다. 그냥 밋밋한 나무만 지붕을 받치고 있는 게 특징이다. 고색창연한 단청도 아름답지만 이렇듯 밋밋한 나무 결의 소박한 멋도 이채롭다.
미황사도 이번이 세 번째. 한 번은 '저자와 함께 떠나는 여행'(<나를 찾아가는 하루 산행>의 저자 신정일 선생님과 함께)에서 달마산 산행도 했었다. 달마산 능선에 서면 다도해가 발 아래로 펼쳐져 있다. 점점이 박혀 있는 다도해의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산은 아마도 달마산뿐일 것이다.
▲ 응진전 달마산을 머리에 이고 서 있는 절집, 아름다운 응진전.
ⓒ 이현숙


▲ 대웅전 지붕위에서 공사를 하는 분들이 아주 대단해 보였다.
ⓒ 이현숙


높은 단 위에 세워져 있는 응진전이 달마산을 지붕 위에 얹고 의연히 서 있다. 기와를 나르고 놓는 사람들의 손길이 바쁘다. 가만히 서서 손의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니 새참 먹으라며 밑에서 부른다. 물론 우리가 아닌 일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나 일손을 잡은 사람들은 쉬이 일손을 놓지 못한다. 지붕위 아슬아슬한 곳, 우리는 스산한 가을 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서 있는데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 욕심을 낸다. 밑에서는 어여 내려오라고 성화를 하는데.
▲ 장례행렬 늦은 오후, 미황사에서 만난 장례행렬.
ⓒ 이현숙


대웅전 마당에 이상한 행렬이 나타났다. 스님 두 분이 앞장 서고, 상복을 입은 어른과 아이들이 따라 가는 행렬이다. 장례를 마치고 와서 절에다 영혼을 모셔 놓는 예식을 하는 것 같다. 상복과 영정은 엄숙함의 대명사인데,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보노라니 꼭 연극이나 영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복장을 갖춰 입고 줄줄이 서서 연출을 하고 있는 것 같고. 아직 어린 아이가 있는 걸로 보아 호상은 아닌 것 같은데, 미리 많이 울어 그런지 영정을 들은 사람이나 뒤따르는 사람이나 무표정한 마른 얼굴들이다. 어린 아이의 장난스런 걸음걸이를 보자 울컥 슬픔이 밀려온다. 석양빛을 받은 정말 쓸쓸한 장례행렬이었다.
▲ 조개잡이 체험장 대죽리 신비의 바닷길에서 조개을 캐는 모습.
ⓒ 이현숙


미황사를 내려와 땅끝으로 내닫는다. 10년 전 보길도 갈 때 밟아본 땅끝을 다시 가는 것이다. 산정리를 지나 국도로 나오자 금방 바다가 보인다. 바다는 언제 봐도 아무리 봐도 그리운 곳, 내 시선은 바다를 향해 활짝 열려 있다. 작은 언덕을 넘어서자 넓은 바닷길을 가진 해안가가 나오고 점점이 흩어져 일을 하는 아낙들이 보인다. 신비의 바닷길이다. '조개잡이 체험 마을, 대죽리'라는 마을인데 바다 안 무인도로 바닷길이 열려 있었다.
▲ 조개잡이 빈 바구니를 옆에 놓고 너스레를 떨던 아주머니...
ⓒ 이현숙


열심히 호미질을 하는 아주머니에게 가만히 다가가 보니 소쿠리가 비어 있다. 늦게 나왔는지, 아니면 다른 그릇에 쏟고 다시 왔는지 궁금했는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큰 소리로 너스레를 떤다.

"참으로 큰일 나 부렀으야. 조개를 일케 쬐끔빽에 못캤으이 영감헌테 쫓겨 나게 생겼으야." "어이구 별 말씀을 요. 요즘 마누라 쫓아 내는 남편이 어디 있어요. 도망 갈까봐 걱정들이지."
"정말이지라? 그렇지라? 참말 이놈 조개가 다 어디로 가뿌렀는지 참 잡아지지가 안능구마."
너스레를 뒤로 하고 걸어나오는데 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간다. 갈 길이 바쁘다. 잠자리도 찾아야 하고 더 깜깜해지기 전에 땅끝도 봐야 하는데. 송호리 해수욕장을 지나 고개를 하나 넘으니 땅끝이 나오는데 여기 아주 도시다. 내 눈이 휘둥그레진다. 땅끝 전망대는 높은 산에 서서 무심히 바다를 내려다보는데 어딘가에서 뚝 떼어다 올려놓은 것 같은 도시가 반듯하게 놓아져 있다.
땅끝마을 이른 아침, 전망대에서 찍은 땅끝마을 모습이다.
ⓒ 이현숙


순간 혼란스러워진다. 아무리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내가 보길도 들어갈 때만 해도 그냥 집 한 채 없는 항구일 뿐이었는데. 숙소를 정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식당 주인에게 물었다. 혹시나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어 한껏 머뭇거리면서.

"저 여기요. 제가 10년 전쯤 왔을 때는 그냥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배가 와 닿아 있었거든요. 그게 맞나요?"
식당 주인 막 웃는다. 난 왜 그러나 쳐다보기만 하다가 되물었다.

"제 기억이 틀리나요?"
"아닙니다. 맞습니다. 한 6,7년 전부터 이렇게 상가가 들어서기 시작했답니다."
난 고개를 끄덕거렸다. 때론 내 기억이 믿을만 하지 않을 때가 있다. 워낙 많은 곳을 다니다 보니 혼동되기도 하고, 10년 전의 기억이니 헷갈릴 수도 있어서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맞는단다. 불현듯 두 개의 감정이 나를 혼란 속으로 몰아 넣는다. 내 기억에 대한 안도감과 철썩 같이 믿어온 땅끝에 대한 배신감이다. '여긴 땅끝이 아니라 그냥 관광지였어'라는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했다.
▲ 땅끝마을 일출 안개 때문에 흐리게 보이는 해돋이 광경...
ⓒ 이현숙


이를테면 난 여행지에 대해 내 스스로 한 약속이 있었다. 관광지를 개방하면 제일 먼저 찾아간다. 왜냐? 개발 이야기가 나오면 순수한 그곳의 멋이 사라져 버리고 마니까. 그리고 한 번 다녀온 관광지는 다시 가지 않는다. 왜냐, 너무 변한 모습이 실망스러우니까.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난 그곳이 궁금해졌다. 변한 모습조차도 궁금해져 다시 길을 떠난 것이다.
이제 관광지는 개발의 척도로만 존재한다. 지자체나 주민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관광지로 노다지를 캐려 하고. 요즘처럼 돈이 필요한 세상,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 그러나 애초 그런 목적으로 개발했던 관광지가 쇠락해 가는 걸 보면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 모노레일 땅끝 전망대를 오르는 모노레일...이른 아침이어선지 타려는 사람이 별로 없어 썰렁한 기운이 감돌았다.
ⓒ 이현숙


우리의 여행지는 금을 캐고 나서 다시 덮어두는 금광이 아니다. 금은 산에 묻혀 있어서 캐내고 다시 덮으면 되지만 여행지는 개발해서 그 모습을 잃어버리면 영영 제모습을 되찾기가 어렵다. 개발개발하지만 다른 곳과 비슷한 모습으로 치장을 해버리면 사람들 눈에서도 멀어지기 마련이고 결국에는 여행자들에게도 외면당하기 일쑤다. 우리의 여행지가 끝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면 근시안적인 개발이 아닌 시간이 걸리더라도 좀 멀리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하다.

 
 
 

용조봉
황후화